3키워드 단편 습작

공구, 카메라, 금발


오랜만에 카센터의 문을 열었다.

고작 한달 전의 일이지만, 나는 사고를 당했다. 갑작스련 교통사고에 다들 놀랐지만 생각보다 부상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휴식으로 나는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비실 한 구석에 놓인 먼지가 잔뜩 쌓인 공구상자를 열어 아주 오랜만이라는 감각에 휩쓸려 상태를 점검했다. 대체로 상태는 좋았다. 사고가 난 동안 그렇게 비가 많이 왔던 것도 아니고, 다른 친구들이 가끔씩 들러 환기를 시켜놓았기 때문에 먼지만 제외하면 나쁜 상태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오픈한 카센터, 내 직장, 나를 보람있게 만든 오일 향.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다. 단지 누구를 제외한다면.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싸구려 금발로 염색한 소녀가 서있었다. 옷은 빈티지인지 정말로 낡은 것인지 구분하기 힘든 정도였고, 손에 잡고 있는 카메라조차 일반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구식 핸드폰이다. 누가봐도 돈이 없어보이는 소녀에게 나는 사진을 찍히고 말았다.

"뭐하러 오셨냐."

애초에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다. 나는 저 싸구려로 도배한 금발 소녀를 구하려다 사고를 당했던 것이고,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소녀를 곱게 볼 수가 없었다.

"아저씨 보고 싶었어."

저 소녀는 이름도 모른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호칭은 그냥 아저씨. 그리고 내가 부르는 호칭은 야, 너 등등. 이름은 사건 진술하며 보았던 느낌은 있지만, 솔직히 그런걸 외우고 다닐 정도로 똑똑한 사람은 아니었다.

"봤으면 가라. 일할거다."

물론 일이라고 해봐야 한달만에 다시 오픈한 카센터니 당분간은 파리만 날리겠지만.

"응. 그럼 또 올게."

하. 미치겠다. 가란다고 정말로 간다. 뉘집 귀한 딸인지 모르겠지만 가정교육 하나는 확실하게 받았군.

"잠깐."

"..."

불러세운 나도 문제지만, 부른다고 서는 저 녀석도 문제다.

"너 알바할 생각 없냐."

나름 혼자서 잘 꾸려나가던 카센터긴 하지만 솔직한 말로 일손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저 녀석은 학교갈 시간에 밖으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가만히 둘 수도 없다.

"응... 아저씨네서 일하면 카메라 살 수 있어?"

"네 관심은 그것 밖에 없는거냐."

어째 아까부터 찰칵거리며 사진을 찍는다 싶었더니 카메라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응! 카메라를 갖고 싶은데 돈이 없어!"


"뭐, 나도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니 최저시급밖에 못준다만, 괜찮다면 부모님 모시고 와라. 근로계약서 쓰게."

"아. 우리 엄마 일 나가셨는데."

"아버지는."

"저기."

소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 천장이었다.

아니, 이 경우엔 하늘이겠지.

정말 멀리도 가셨다.

"아, 음. 미안하다."

"괜찮아. 아저씨가 아는 게 더 이상하잖아?"

솔직히 말해. 소녀를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하기 무섭고, 거북했던 것 뿐이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어. 널 구하던 그 날에 네 아버지 유언을 들은 사람은 나였으니까."

"역시 아저씨가 엄마한테 얘기한 거였구나?"

"음... 딱히 할 말은 없다만, 역시 미안하다. 네 아버지를 구하지 못해서."

시간이 조금만 더 충분했다면, 적어도 내가 목숨을 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저 소녀의 아버지는 살아있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기에 소녀를 대하는 것이 거북하고 미안했다.

"역시 아저씨는 상냥하네."

"어허,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근로계약서 작성할테니까 내일 어머님도장 받아서 같이 와라."



뭐, 결국 이러저러한 일이 있고, 사건사고가 터진 결과.


"아저씨 나 드디어 카메라 샀다!"

"오, 초보자가 쓰기엔 나쁘지 않다고 들었던 그거네."

금발 소녀는 카메라를 샀고, 나는 여전히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잘나가냐 하면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나름 동네에서 신뢰가 탄탄하니 안정되어있다는 느낌이다.

"아저씨. 사진 찍어도 돼?"

그리고 소녀는 오늘도, 아니... 오늘부턴 새로운 카메라로 나를 찍는다.

"언제는 허락 받고 찍었냐. 맘대로 해."

"응!"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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